독서/구절

물속에서 - 진은영

진욱. 2013. 6. 8. 13:26

 가만히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

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나는 잠시 떨고 있을 뿐

  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 일

  물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푸르던 것이 흘러와서 다시 푸르른 것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투명해져 나를 비출 뿐

  물의 색은 바뀌지 않는 일

 

 

  (그런 일이 너무 춥고 지루할 때

  내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상상해볼까?)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

  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

지게

  점점 부풀어오르게

  잠이 잠처럼 풀리고

  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

  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

  그 물빛에 나도 잠시 따스해지는

 

 

  그런 상상 속에서 물속에 있는 걸 잠시 잊어버리

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