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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리뷰

『쳇 베이커』 - 제임스 개빈

by 진욱. 2022. 1. 4.

📖 소설이나 음악이나 예술가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독립된 삶을 산다고 생각하기에 작품과 예술가는 따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려 해도 자꾸 다른 생각이 들게 하는 음악가가 여기 있다.

📖 처음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을 들었을 때의 신비로운 목소리, 그의 부드러운 트럼펫 연주를 듣고 반해서 음주와 함께 자주 들었었다. 하지만, 어쩌다 찾아본 마약으로 얼룩진 그의 삶은 그의 연주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었다.

📖 이 책을 샀던 것은 그때였다. 아무리 작품과 예술가를 다르게 보아야 한다지만, 쳇 베이커는 정도가 좀 심해서 도저히 따로 보기가 힘들었다. 이럴 때 보통 두 가지 방법을 택하는데 그냥 마음에서 놓는다거나 작가를 좀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쳇베이커를 놓기 싫었던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 마약으로 망가지고 사랑하는 이에게 폭력적이며 안하무인인 쳇 베이커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마력에 홀려 같이 마약에 빠져들고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면서도 그에게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그는 마치 노래로 사람을 홀려 죽음에 빠져들게 하는 세이렌을 떠올리게 한다.

📖 자기 스스로 망가뜨린 삶, 하지만 연주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음악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 쳇 베이커야 말로 날개가 있으면 안 되는 존재에게 날개를 달았을 때 그 존재가 망가지는 모습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마치 신이 재능을 주고 그 재능을 감내할 성숙한 의식을 주지 않고 그 존재의 망가짐을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 다 읽고 나서도 '쳇 베이커는 과연 주제 의식을 갖고 있었을까?', '단지 마약을 사기 위해 음악을 한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말년에 나오는 그만이 가능한 양질의 앨범들은 무엇일까?'와 같은 의문이 더욱 쌓인다. 그래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문제는 해결된 것 같다. 쳇 베이커의 악마와 천사의 모순적인 양면을 더 확실히 확인하자 오히려 연주가 다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담담한 연주, 부드러운 목소리, 예쁜 멜로디가 오히려 악마의 속삭임 같기도 하다. 그를 놓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8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책이지만, 굉장히 재밌게 잘 읽힌다. 특히 이 책이 좋은 점은 쳇베이커의 앨범을 선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쳇 베이커는 생애 동안 엄청난 분량의 녹음을 남겼는데, 연주의 퀄리티 차이가 매우 심하다. 쳇 베이커의 앨범을 사전지식 없이 찾아 들으면 큰 후회를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책을 읽으며 작가와 번역가가 주석으로 추천하는 양질의 연주가 포함된 앨범을 찾아 들을 수 있다.

📖 '본투 비 블루'라는 쳇 베이커 영화가 있다. 책을 읽는 도중에 영화를 보았는데,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생각하면, 영화는 완전한 허구나 사실이라기보다는 사실들을 소재로 짜깁기 하여 쳇 베이커 인생의 일부분에 덧씌워둔 느낌이다. 쳇 베이커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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