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에 대한 조금은 자세한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날 깔끔하다고 이야기한다.
얼굴이 흰편이고 옷입는것도 단순하게 입고 다녀서 그런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지져분...(-_-..내 이미지..ㅜㅜ..) 하다
예전에 살던방... 뒤에 쌓인 정리 안된 책들...
난 상당히 정리하는 것을 귀찮아 한다 ㅋ
내가 왜 내 무덤을 파고 있는건지......
어쨋든 이렇게 깔끔한편은 아닌 내가 나름 밖에선 깔끔한척 하고 돌아다닐 수있는건 (ㅋㅋ) '진욱이는 깔끔해'라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때문이다. 타인들의 평가에 의해 가상의 내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야할까..
살짝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예술계에서도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서 이런 모습이 보이곤한다.
작가의 별 의도없거나 큰 의도는 아니었던 작품을 비평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에게도 그런 행운아닌 행운이 따럿다.
수많은 아버지 중 현대미술의 아버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세잔
세잔하면 두가지 그림이 생각난다. 사과가 있는 정물화와 소나무가 있는 풍경화...
그리고 후기인상주의에 속하는 화가답게 그의 그림을 보면 인상주의가 생각난다.
<사과와 오렌지>--1895〜1900년, 캔버스에 유채, 74*94,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생트빅투아르 산> 1885~7년, 캔버스에 유채, 65*81,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그런데 세잔은 후기인상주의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그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우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대미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현대미술의 아버지란 위치가 어느자리인지 알 수 있다.
현대미술이라고 해서 현재의 미술을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말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과거이니 그 과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이미지로 생각해야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이전 모더니즘의 선구자 정도로 생각하면 될듯하다.
호통개그의 아버지 박명수...ㅋㅋ
그는 어떻게 이런 멋진 평가를 얻을 수 있었을까?
비평가들이 작품속에서 후에 등장할 추상주의, 입체주의의 핵심을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위의 정물화를 보자.
자세히보면 시점이 일정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인간이 무엇인가를 바라볼때 시선은 기하학의 소실점같은 하나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고한다. 사과하나를 보더라도 사과의 중심에 시선을 뒀다가 그 옆에 그 위에 그 아래에...시점을 계속바꾼다고 한다. 세잔은 그림 하나를 그릴때 너무도 오랜 시간을 투자한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인물화가 별로 없는걸지도 ㅋ)
그 오랜 시간의 관찰결과 세잔은 이런 최신연구에서야 발견된 결과를 감각적으로 느낀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정물화에서는 바로 그 시선의 유동을 느낄 수 있다. 그림에 표시한(미안합니다..발로 했습니다ㅠ) 1번을 보면 시선이 변화했다는 것을 느낄 수있다. 또한 2번을 보면 탁자의 높이가 양쪽이 다르다는 것에서 시점 변화를 느낄 수 있다.
3번의 빵도 위, 아래에서 본것처럼 시선이 변화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같지 않은가?
바로 피카소다.
<울고있는 여인>,1937, 파리피카소 미술관
이 그림에서 우리의 시선은 분명 사선을 향하고 있는 여인의 오른쪽 뺨인데 그림에서는 왼쪽 뺨까지 보인다.
바로 시선의 이동인 것이다.
세잔의 작품은 입체주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연을 재생산하기 보다 그에 합당한 조형적 등가물을 해석해내야 한다"다는 그의 좌우명에 따라 그의 풍경화는 산은 원뿔로, 나무는 원기둥으로, 집은 육면체로 단순화시켜낸다. 회화의 구성을 하나의 본질적 특성으로 바꾼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추상화이다.
그린버그가 이야기했듯 추상으로의 변화를 모더니즘의 가장핵심적 특징이라고 볼때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무연작>몬드리안
추상회화는 이미지를 점차적으로 하나의 본질로 바꿔간다.
여기까지는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를 깔끔한 사람의 아버지(응????)로 만든 것은 사람들의 평가였다.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만든 것도 바로 사람, 여기서는 비평가들의 평가였다는 점을 생각해봐야한다.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만든 신화는 프랑스의 상징주의자의 해석을 영국비평가가 영어권에 소개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세잔에 대해 좋은 평가의 글을 쓴 이들은 베르나르(Emile Bernard)와 드니(Maurice Denis)같은 상징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당시 이해되지 못하고 있던 세잔의 회화에서 자신들의 관점과 소통되는 면을 발견하고 그에게 좋은내용의 글을 쓴다. 그들은 세잔의 작품이 순수형식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자신들과 소통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순수회화는 회화적 구성의 통일성이 환기하는 하나의 본질적 특성의 실현을 말하는데, 이는 상징주의적 의미와 연관된 것이다. 하지만, 후대 비평가들은 상징주의 의도와는 다르게 순수개념을 추상으로 이해했고 이것이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영국 비평가 프라이는 베르나르와 드니의 글을 재해석하며 세잔의 회화가 순수한 형식을 지향하는 형식주의라고 이야기한다. 즉, 모더니스트의 미술임을 이야기한것이다. 현대미술의 특징이 본질적으로 형식 구성으로의 복귀임을 이야기한 프라이의 주장은 이후 비평가들에게 절대적 표준이되고 20세기 중반 미국의 모더니스트 비평가인 그린버그가 이 주장을 수용해 미술의 순수성을 미술형식의 본질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회화의 순수성을 매체와 형식의 본질성에로의 복구로본 그린버그에 의해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 위치를 굳건히 가져가된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모더니즘 비평가인 그는 모더니즘을 환영의 제거, 매체와 형식의 본질성으로의 복구로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세잔이 그림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맞을까? 단순히 해석이 더 멋진...그런 것이 아닐까?
세잔을 신화화하는 과정에서 빠진 중요한 개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다.
세잔이 말한 다음의 문장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Refaire Poussin sur nature(자연을 따라 푸생을 행하라)
푸생은 고전주의 화가이다.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세잔이 고전주의 화가인 푸생을 따르라고 이야기하는 것자체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또한 자연을 따르라는 것은 무슨 뜻인지..
결론적으로 세잔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 화가가 아니다. 그는 고전주의를 사랑했고 그는 고전주의를 새로운 방법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세잔은 회화의 본질을 자연의 생명감과 원초적 특질의 구현으로 보았고 이것들이 진정한 고전주의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푸생의 풍경화에서 그는 자연의 조화를 원초적 감각으로 구현해낸 것을 본 것이다. 세잔은 자연의 수용과 그것의 회화로의 전환이 무엇보다 빛과 색에 대한 화가의 감각에 기초한 것으로 생각했고 변조라는 독창적 회화형식으로 표현해내려고 했다.
그의 창조적인 형식을 볼 때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릴만 하나 그의 회화를 평면성의 순수회화의 개념과 연관짓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세잔에게있어 독창성이란 자연에 근거한 원초성의 발현이지 자연에의 참조를 무시한 '순수형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Paul Cezanne, Mountains in Provence (near l'Estaque)
about 1879, The National Museums and Galleries of Wales, Cardiff
분명 세잔의 작품은 현대미술(모더니즘)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의도야 어쨋건 그의 작품 속에서 비평가들은 추상으로의 이행이라는 흐름을 읽어내었고, 그것은 분명 모더니즘의 특징이기 때문에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워도 충분하다.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맞네 아니네라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고전주의를 그려내려했고 자연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점점 자연에서 멀어져간 모더니즘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그의 그림을 볼땐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평가하기전에 그가 그림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생트빅트아르 산>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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