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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가

에곤쉴레, 너무 짧았던 10년

by 진욱. 2013. 6. 13.

Nu a la chevelure noire (debout), 1910 와 Autumn Trees, 1911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혜안을 가진 열명을 포함한 천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명의 천재, 한명의 발명자, 한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 천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페슈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1910)"

 

누구보다도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그 재능을 누구보다 열심히 갈고 닦았던 자신을 사랑했던 한 천재화가가 있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겨우 10여년의 작업시기와 28년의 짧은 여생뿐이었다.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던 천재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를 추억하려 한다.

 

 

Seated Couple, 1915 와 Man and Woman I (Lovers I), 1914

 

에로티시즘의 출발, 어린 시절,

쉴레는 1980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다. 나름 중산층의 안락한 삶을 살았으나 아버지 결혼당시부터 성병을 갖고 있었다. 이로인해 사망하게 되고 어머니는 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에도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이런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는 그의 작품에 큰영향을 미친다.

쉴레는 금기시 되어오던 자위나 동성애등을 과감하게 표현함으로써 아름다운 섹스보다는 은밀한 행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이런 공공연한 비밀을 노골적으로 공개함으로써 관객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은밀한 행위를 표현함으로써 거울이 되어 관객을 비추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사랑의 행위는 인간의 사랑행위가 얼마나 덧없으며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준다. 쉴레에게 있어서 애로티시즘의 미학은 그의 스승 클림트의 그것처럼 관능적인 흥분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다. 가장 깊은 절망으로 떨어지는 듯 무기력하고 공포감, 두려움에 가득찬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의 행위는 긴장과 불안함만 가득하다.

이것은 성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그의 아버지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

 

 

  1. 01파란작업복을 입은 클림트 & 사후의 클림트, 1918
  2. 02왼쪽위부터 반시계방향 다나에(클림트,1907), 다나에(쉴레,1909), 레다(클림트,1917)
  3.  

  4. 클림트여, 클림트여,

    1906년 쉴레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그는 그의 스승이자 동반자가 되는 클림트를 만나게 된다. 당시 클림트는 젊은이들에게 열망, 관심, 동경의 대상이었다.

    쉴레 역시도 마찬가지라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와 만날수 있었고, 클림트는 첫만남에서부터 쉴레에 대한 칭찬과 후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클림트는 쉴레에게 자신의 전속모델을 소개 시켜주고, 후원자를 연결해줬으며 빈미술공방에 소개시켜주기도 하면서 쉴레를 미술계의 중심으로 이끈다.

    쉴레 역시 자신을 '제2의 클림트'라고 부르며 클림트를 본받으려 노력한다. 재밋는 것은 이러한 그들의 관계가 단순한 스승-제자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02를 보면 1909년 쉴레의 다나에는 1907년 클림트의 다나에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단순한 답습이 아닌 전혀분위기를 이끌어낸 것이 보인다. 그는 거장의 그림자에서 새로운 한발을 내딛은 것이다. 클림트 역시 쉴레를 자신의 제자로 본 것이 아닌 동반자로 보았던듯 1917년 쉴레의 다나에에서 영감을 받은 레다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의 개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각자가 나름대로의 분명한 개성을 유지했던 것이다. 이후 쉴레는 클림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세계를 펴나가지만, 그에게 있어 클림트는 말그대로 인생의 구도자였을 것이다.

     

    그런 클림트가 1918년 먼저 세상을 떠난다. 이때 쉴레는 그의 유체 옆에서 세장의 스케치를 남긴다(그림 01). 아이러니하게도 몇달뒤 쉴레 역시 유행성 독감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5.  

     

 

Portrait of  The Painter Karl Zakovsek, 1910 & 뭉크의 절규

 

또다른 한발자국, 표현주의

쉴레는 표현주의 작가들이 출품한 인터내셔날 쿤스트샤우스에서 큰 감명을 받은 후 차츰 클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클림트의 지나친 장식적 경향에서 벗어나 표현주의적인 강렬한 감종표출로 방향을 선회한다. 쉴레는 자신의 심리적 감정을 깊게 내보이려고 노력했다. 이때 예술적 반응에 대한 여과장치이자 사회적 고통에 대한 대항마로서 자기자신을 내세워 자화상을 주로 그린다.

이제 쉴레는 자신의 상처와 사회의 모순을 클림트와 같은 화려한 장식으로 감추는게 아닌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내면적 고통과 고민을 솔직하게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표현주의작가로 변모한 것이다. 특히, 그는 우리가 익히 잘아는 절규의 작가(?) 뭉크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둘의 작품은 뭔가 비슷한 이미지가 있다.

 

 

The Fighter 와 Self-Portrait Pulling Cheek, 1910

 

  

선으로도 많은 것이 표현된다... '실레만의 선' 

실레의 작품을 보면 색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간혹 나오는 악세사리의 붉은 색은 에로틱한 느낌을 더해주고 그림에 너무도 적당한 색의 사용은 그 작품의 느낌을 배가 시켜주지만 실레의 그림의 주는 바로 '선'이다. 마치 현대의 만화나 일러스트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그의 작품은 삽화같은 느낌을 지닌다.

실레는 선의 강조를 통해 화면과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운동감을 살리고 싶었던 그가 선을 중요시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쉴레는 하나의 윤곽선이나 두세번의 붓질로 한 인물의 특징을 표현해내는 그만의 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선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울리는 공포와 환상, 그리고 가혹한 자기학대를 보여준다. 이 '선'은 훗날 '쉴레만의 선'으로 불리우며 그를 드로잉의 천재로 사람들에 뇌리에 깊게 새겨놓는다.

 

 

 

  1. 01Self Portrait, 1914  & Self-Portrait in Street Clothes Gesturing 1910
  2. 02이중자화상 & Self-Portrait Pulling Cheek, 1910
  3. 나도 널 보고 있어, 자화상

    쉴레는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나르시스트의 표현이 아닌 인간의 본성을 파해치는 작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쉴레의 자화상을 가만 보다보면 모델의 눈이 항상 관객쪽을 보고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자신의 내적 고백만을 보이는 것이 아닌 자화상 속의 눈을 통해 감상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이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자화상이나 인물화의 눈의 시선은 쉴레의 선과 더불어 '쉴레 매니아'를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와 더불어 쉴레의 자화상에는 이중, 삼중자화상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잠재의식의 자아라는 개념을 이미 깨닫고 있었는지쉴레의 작품에는 그이기도 하면서 그와 적대적인 모습의 또다른 자아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중자화상은 쉴레 작품의 공격성향과 더불어 프로이트의 '죽음의 본능'을 생각나게 해준다.

 

 

  1. 01Osen with fingertips laid together, 1910  & ?
  2. 02? & Two Kneeling Figures (Parallelogram), 1913

  

언제 폭팔할지 모르는 긴장감, 공격성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삶의 본능이 있는 반면, 정반대되는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한다. 파괴의 본능이라고도 불리는 이 죽음의 본능은 생물체가 무생물로 환원하려는 본능을 일컫는다. 타나토스(Thanatos)라고도 한다. 이러한 본능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거나 철벌하려는 욕구를 피하지 못하는데, 이로 인해 인간에게는 공격성이 나타난다.

쉴레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공통된 감정이 있다. 바로 긴장감이다. 사랑의 행위에서도 그들의 몸짓과 눈빛에는 긴장과 공허가 서려있다. 자신의 내부로 서서히 침식되어가는 좌절과 긴장 불안등의 심리는 자화상에서 자신의 사지를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공격성을 드러낸다. 

 

  1. 01Portrait of Johann Harms & The Family, 1918
  2. 02Semi-Nude Girl, Reclining, 1911 & Woman Undressing, 1914

  

불꽃같았지만...

쉴레의 짧은 10년의 화가로서의 기간... 28세라는 젊은 나이의 요절... 그는 그 기간을 정말 불꽃처럼 살아갔다.

1912년 그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겪는다. 클림프와 헤어지고 은둔처를 찾아 조용히 작품제작을 하던 중 어린소녀들의 누드를 주제로 에로틱한 그림을 그렸다는 부도덕함과 미성년자 유혹이라는 죄명으로 24일간 감옥생활을 하게되는 것이다. 이기간 그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큰 상처를 입는다. 크나큰 굴욕과 좌절, 개인적 예술성장에 고립감을 느끼고, 그 자신이 특별한 예술가의 사명이 있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에로티즘을 버리고 명상에 잠긴 성인들을 그리는등 예술세계를 변화시킨다.

결혼, 군복무 이후 1918년 전시회성공과 초상화주문 인기로 경제적으로 성공하게되나 그해 아내를 간병하던중 옮은 유행성독감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28세, 클림트가 죽은지 몇달 뒤의 이야기이다...

 

쉴레는 성격상 주위와 어울리지 못하고 고독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의 모습을 통해 날카로운 선과 수수한 색상, 뒤틀린 사지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누구보다도 자신의 문제를 살피고 격정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인간 내부의 뒤틀림을 그렸고 인간의 고통을 에로틱한 요소로 강렬한 충동이 일어나게 표현한 창조자였다.

 

그에게 10년만이라도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그는 또 어떻게 변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