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영하 북클럽 함께 읽기로 알게된 책이다. 1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책이지만 생각보다 들어있는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너무 길어서 4줄 요약을 해보면,
1.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면 독립성을 가져야하고,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주관하는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2. 이를 위해 경험과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하며 여기서 자아상이 만들어진다.
3. 현실적 자아상을 위해서는 자기 인식이 중요하고 자기 인식은 표현을 통해 가능하다.
4. 끊임없이 점검해야한다.
---
우리는 과연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스스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작가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에는 존엄성과 행복을 포함한다고 시작한다. 스스로 자기를 결정할 수 있어야 존엄성을 가질 수 있고 행복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해야할 이유일 것이다.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한다는 것은 곧 독립성을 갖는 것이다. 독립성은 당연히 외부로 부터의 압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우리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외부와 끊임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이므로 우리의 경험은 외부와 얽혀있고 따라서 순수하게 내적인 없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부에 휩쓸리는 존재일까?
아니다. 내면세계가 외부와 얽혀있다고 해도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주관하는 삶의 작가요 주체가 된다면 내적 독립이 된 것이다. 이때 외부 세계는 단순히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린 자신의 경험과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인식하고 이해, 평가하며 거리를 두어야 한다.
여기서 자기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자아상이 만들어진다. 자아상은 자신이 어던 모습이 되고 싶다는 모델이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자아상에 맞추어 자기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자아상은 현실과 동떨어져있을 수 있다. 그런 자아상이라면 우린 일체감을 가질 수 없고 자기결정을 할 수가 없다. 자기 결정은 외적으로 해석할 때 행동의 자유를 뜻한다. 내적으로 해석될 때에는 사고와 경험과 의지에 있어서 내가 되고 싶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경험과 자아상이 서로 멀리 떨어지면 나에게는 자기 결정력이 없는 것이다. 이때 간극이 크면 내적 자유의 제한, 즉 내적 강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자기 인식이 중요하다. 의식되지 않은 삶의 이력을 꿰뚫어 보는 작업이 있어야 걸림돌이 되는 내적 강박과 자기 기만을 해결 가능하다. 우리의 사고와 감정과 소망이 펼쳐지는 세계는 고치 속에 갇힌 향 홀로 존재하는 영역이 아니기에 시선이 외부로 향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시선을 내부로 돌려 나와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밖으로 돌려 타인을 이해하려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보아야 한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교정 기관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자기 기만에 매우 취약한 자아상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검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확신이나 믿음을 포기하고 다른 믿음을 받아들이면서 사고 세계에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자기 인식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정확한 말을 만드는 것이다. 우린 언어로 경험을 분류하고 이해하고 사고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을 정확한 말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기 인식이 가능하다. 조금 더 확장하면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표현은 삶의 방식과 방식 안의 개별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하고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다. 내면 공간에서는 자기 인식이 불가능하므로 외부 세계로 가는 길을 걸어야하니 세상에 나를 보여야 한다. 이는 말, 행위, 음률, 붓 터치 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를 통해 우리는 세계의 인과율에 기호체계로 반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세계가 우리 사고 체계 안에 수용되고 편입될 수 있는 이해가능한 것이 된다. 이는 언어가 경험을 개념적으로 조직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식된 경험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되지 못한 것을 의식화 하는 것. 이 두가지 방법을 이용해 언어로 표현하면서 감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 결정을 내면으로 확장할 수 있다. 나아가 현실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자신의 감정에 동감하고 그 감정을 정신적 정체성에 융합시킬 수 있다. 이러한 융합이 자기 결정의 중요한 의미이다.
또한 다른 언어를 배움으로써 우린 문화적 정체성이 우연한 것이며 항상 대체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교양을 얻게 된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따라하기 -> 언어 법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언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 언어를 자기 성향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틀로 사용하기 -> 외국어를 배움으로써 다른 정신의 낯섦을 배우기 -> 선택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하나의 언어를 선택하여 그 언어에 자신을 동화하기] 이다. 낯선 것들에 시달린 긑에 지쳐 익숙한 것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언어의 틀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믿음이 낯설어지고 후에 그 믿음이 투명성을 얻고, 그 다음 비로소 자기의 것이 되어 다시금 친숙해지는 아래와 교육 과정의 전형적 현상과 비슷하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사고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열어주는 행위이다. 또한 자기결정에서 중요한 자아를 서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더 나아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어떠한 길을 밟으면서 살아왔는지 떠올리는 자기 인식의 한 형태이다.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거대한 내적 변화를 만들어 낸다. 소설 한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아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또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문학적 글쓰기는 말에게 그것이 원래 가진 의미와 시적 힘을 되돌려주려는 노력이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울림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다.
교양을 쌓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교양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는 단순한 지식과는 다른 말이다. 문화를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구별해야하는 일이다. 단순히 아는 것은 지식과 박학함을 이루기는 하지만 교양의 구성 요소는 아직 아닌 것이다. 이해와 경험이 자기 안의 것들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만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비록 풍부한 지식은 잇을지 몰라도 아직 교양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고 내적 입장을 표명한다는 심정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가야한다.
문화를 습득의 과정을 통해 어떤 역할을 수행할 때 교양이 된다. 자신이 쓰는 언어가 독서를 통해 풍부해지고 차별화되고 독립적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교양의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교양을 쌓는다는 것, 그것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 문화적 구조는 우리에게 우연히 다가와 영향을 주고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 안에서 의식없이 움직이다 습득의 과정과 단계를 밟으며 조금씩 깨어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의 문법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더 큰 문맥에서 이해하고 나면 그 문화가 복수의 가능성 가운데 하나임을 알게 된다. 점차 내적 자유도도 확대되어 맹모적으로 각인되엇던 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을 수 잇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계속 이루어져 자신이 항상 새롭게 화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에게 주용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자기 결정에 있어서 타인은 어떤 역할을 할까? 우린 타인과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타인으로부터 받는 영향력 가운데 자기 결정을 방해하는 것과 도움이 되는 것을 구분해야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도덕적 감정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준다. 이는 자기 결정에 관한 문제가 나왔을 때 우리를 이끄는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자아상을 점검하고 자기 인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나 자기 기만등에 의해 내가 조종되지 않기 위해서는 질문을 던지며 계속해서 깨어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자기 결정은 과정은 이렇다.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 각자 차별된 자아상 만들어가기 ->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기,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자신 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갈고 닦기, 소리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 방어하기, 자신의 목소리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