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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베이비 팜

by 진욱. 2021. 1. 29.

본격 출산 스릴러라는데, 왜 스릴러인지는 모르겠는 소설, 엄청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만 타임 킬링 용은 아닌 소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니고 그 배경을 대표할 수 있는 네 여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골든 오크스, 일명 '농장'이라 불리는 대리모 관리소로 모이고 그 속에서 여러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 소설은 대리모에 관한 소재로 만들어진 글이지만, 절대로 대리모의 도덕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를 위한 글이 아니다.

여성의 자기 몸 결정권과 대리모의 정당성 논쟁을 주요 축으로 계층과 인종,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읽고 있는 이가 그 무자비한 현실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특히 요즘 뻔하게 등장하는 페미니스트 소설이 보이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 가부장제의 불합리함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과 같이 억압받는 이에 속하는 이민자와 이런 문제들을 만드는 근본적 이유인 경제 시스템으로까지 이야기를 확대한다.

정말 좋았던 것은 시스템이 옳으냐 그르냐, 등장인물이 선하냐 악하냐는 이분법적 분할에서 크게 벗어나서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코로나 19 이후 지금까지 있었던 성장주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색되고 있는 돌봄, 로컬 등의 사고가 이분법적 분할에서 벗어나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 시기에 참으로 읽을 만한 소설이다.


p314. 제인은 그 사실을 이애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인은 단순하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인데 한쪽 면밖에 보지 못한다. ... 그녀가 돈을 번다는 이유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왜 더럽다는 것인가?선한 행동이, 단지 아테가 이득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덜 선한 행동이 되는 걸까?

p.327. 리언은 정부가 자본주의의 혹독한 위기에 대처하는 불가피한 임시방편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 부문을, 혹은 민간 부문을 활성화하는 시장을 결코 억압해서는 안되며, 시장이야말로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효율적이며 부패 가능성이 가장 적은 수단이라는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p.340. 메이는 마치 레이건이 무슨 현명한 말이라도 한 듯 반응한다.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느끼고 싶어할 뿐임을 터득해온 터다.

p.438. "무언가가 옳다고 믿는다고 해서, 꼭 그대로 행동할 필요는 없잖아!" - 메이

p.440. 부자들이 실제 인간들에게 대접받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로봇은 결코 골든 오크스를 운영하지 못할 것이다.

p. "제이가 너를 여기 살게 해주는 건, 그게 그녀에게 정말 좋은 거래이기 때문이야. 너그러운 행동이 아니라고."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 레이건은 심술 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야." 제인은 대답했다. "나는 고맙게 생각해."

 

p.605. 작가의 말 > 그들의 삶과 장래성, 그리고 나의 삶과 장래성 간의 격차는 현격하다. 그 격차를 메운다는 게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지 나는 자주 생가해보곤 한다. 그리고 평생 수없이 들었던, 내가 '아메리칸드림'의 전형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적이 그렇듯 이 간극 역시 행운과 우연에 크게 기대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p.607 역자의 말 >  각기 다른 배경의 네 여성 인물을 각 장의 내러티브의 중심축으로 번갈아 제시하면서 대리모에 관한 논쟁을 넘어 계층과 인종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자본주의 미국의 복잡한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가까운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주한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는...

이 소설의 신선한 면은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 문제 및 대리모의 정당성을 다루는 방식과 주제의 확장성에 있다. 기존의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작품들은 대부분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 가부장제와 전체주의적 억압을 기반으로 여성의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갈등의 전면에 여성 인물들을 내세우고 심지어 역학 관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소위 '의뢰인'이라는 인물들 또한 여성으로 제시함으로써, 소설이 다루는 문제의 판을 이민자와 근본적인 경제 시스템으로까지 확장한다. 

결국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문학적 장점은 현대 세계의 도덕적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온갖 의문을 골든 오크스, 일명 '농장'이라고 불리는 확대경을 통해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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